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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방송] 광주 고려인마을, ‘사할린동포 이주와 귀환의 역사’ 인문강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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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방송] 광주 고려인마을, ‘사할린동포 이주와 귀환의 역사’ 인문강좌 개최
최상구 KIN 대표 초청… 강제동원의 아픔과 귀환의 여정 되새겨
광주 고려인마을은 지난 19일 고려인문화관 주관으로 고려인마을커뮤니티센터에서 ‘사할린동포 이주와 귀환의 역사’를 주제로 인문강좌를 개최했다.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이날 강좌는 지구촌동포연대(KIN) 최상구 대표를 초청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으로 사할린에 이주한 한인들의 고단한 삶과 해방 이후 귀환운동, 그리고 현재의 현실을 조명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최 대표는 강의에서 “사할린동포란 1945년 8월 15일 이전 사할린에 이주하거나 출생한 한인과 그 배우자, 직계비속을 포함한 가족을 의미한다”고 정의했다.
* 광주 고려인마을은 지난 19일 고려인문화관 주관으로 고려인마을커뮤니티센터에서 ‘사할린동포 이주와 귀환의 역사’를 주제로 인문강좌를 개최했다./사진=고려인마을 제공
이어 그는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전쟁 수행을 위해 강제동원돼 탄광과 비행장 건설 등 혹독한 환경에서 노동을 해야 했으며, 해방 이후에도 국적 문제로 귀환 대상에서 제외돼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소련은 지역 개발을 위한 노동력을 이유로 귀환을 거부했고, 일본 역시 한인들을 자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로 인해 많은 사할린 동포들은 귀환의 꿈을 접은 채 낯선 땅에서 살아가야 했다.
강의에서는 이중징용과 해방 이후 차별 문제도 조명됐다. “2년만 일하면 된다”, “한 집에 한 명은 반드시 가야 한다”는 말로 현지 징용을 강요당한 한인들은 이후 소련 점령 아래 ‘적성국 국민’으로 분류돼 이주, 취업, 승진 등에 제약을 받았으며, 가족 해체와 고립이라는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야 했다.
또한 최 대표는 1958년 일본인과 결혼한 사할린 한인 약 1천 명이 일본으로 귀환한 사례와 박노학, 이희팔, 심계성 등이 결성한 ‘화태귀환 제일한국인회’의 활동, 편지 교류를 통한 귀환 희망자 명단 작성 등의 사례를 통해 사할린 동포들의 귀환 운동의 구체적인 역사도 생생하게 전했다.
지구촌동포연대(KIN)는 2006년부터 사할린 현지 실태조사와 구술 기록, 묘지 조사, 국제 심포지엄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유즈노사할린스크 제1묘지에서 1,593기의 한인 묘를 확인했다. 또한 2014년부터는 ‘세상에 하나뿐인 달력’을 제작·배포하며 동포들과의 문화적 연결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2020년 5월, ‘사할린동포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최상구 대표는 또한 “현재 구소련 지역 거주 동포들을 포괄하는 법체계가 사할린동포지원 특별법과 중앙아시아 고려인동포법으로 이원화되어 있어 제도적 혼선이 있다”며 “법적 정비와 통합적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인문강좌는 고려인문화관에서 진행 중인 ‘중앙아시아로 건너간 사할린 한인 특별전’의 연계 행사로, 디아스포라 한인의 아픈 역사와 현실을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이 됐다.
고려방송: 안엘레나 (고려인마을) 기자
최상구 KIN 대표 초청… 강제동원의 아픔과 귀환의 여정 되새겨
광주 고려인마을은 지난 19일 고려인문화관 주관으로 고려인마을커뮤니티센터에서 ‘사할린동포 이주와 귀환의 역사’를 주제로 인문강좌를 개최했다.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이날 강좌는 지구촌동포연대(KIN) 최상구 대표를 초청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으로 사할린에 이주한 한인들의 고단한 삶과 해방 이후 귀환운동, 그리고 현재의 현실을 조명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최 대표는 강의에서 “사할린동포란 1945년 8월 15일 이전 사할린에 이주하거나 출생한 한인과 그 배우자, 직계비속을 포함한 가족을 의미한다”고 정의했다.
* 광주 고려인마을은 지난 19일 고려인문화관 주관으로 고려인마을커뮤니티센터에서 ‘사할린동포 이주와 귀환의 역사’를 주제로 인문강좌를 개최했다./사진=고려인마을 제공
이어 그는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전쟁 수행을 위해 강제동원돼 탄광과 비행장 건설 등 혹독한 환경에서 노동을 해야 했으며, 해방 이후에도 국적 문제로 귀환 대상에서 제외돼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소련은 지역 개발을 위한 노동력을 이유로 귀환을 거부했고, 일본 역시 한인들을 자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로 인해 많은 사할린 동포들은 귀환의 꿈을 접은 채 낯선 땅에서 살아가야 했다.
강의에서는 이중징용과 해방 이후 차별 문제도 조명됐다. “2년만 일하면 된다”, “한 집에 한 명은 반드시 가야 한다”는 말로 현지 징용을 강요당한 한인들은 이후 소련 점령 아래 ‘적성국 국민’으로 분류돼 이주, 취업, 승진 등에 제약을 받았으며, 가족 해체와 고립이라는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야 했다.
또한 최 대표는 1958년 일본인과 결혼한 사할린 한인 약 1천 명이 일본으로 귀환한 사례와 박노학, 이희팔, 심계성 등이 결성한 ‘화태귀환 제일한국인회’의 활동, 편지 교류를 통한 귀환 희망자 명단 작성 등의 사례를 통해 사할린 동포들의 귀환 운동의 구체적인 역사도 생생하게 전했다.
지구촌동포연대(KIN)는 2006년부터 사할린 현지 실태조사와 구술 기록, 묘지 조사, 국제 심포지엄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유즈노사할린스크 제1묘지에서 1,593기의 한인 묘를 확인했다. 또한 2014년부터는 ‘세상에 하나뿐인 달력’을 제작·배포하며 동포들과의 문화적 연결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2020년 5월, ‘사할린동포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최상구 대표는 또한 “현재 구소련 지역 거주 동포들을 포괄하는 법체계가 사할린동포지원 특별법과 중앙아시아 고려인동포법으로 이원화되어 있어 제도적 혼선이 있다”며 “법적 정비와 통합적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인문강좌는 고려인문화관에서 진행 중인 ‘중앙아시아로 건너간 사할린 한인 특별전’의 연계 행사로, 디아스포라 한인의 아픈 역사와 현실을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이 됐다.
고려방송: 안엘레나 (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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